샌드위치의 정의
통상적으로 우리는 샌드위치를 빵 사이에 뭔가 끼운 음식이라고 은연중에 정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핫도그는 샌드위치인가?

한국에서 핫도그라고 부르는 막대기에 소시지를 끼운 뒤 반죽을 입혀 튀긴 것은 사실 콘도그라고 불린다. 미국에서 핫도그란 소시지를 핫도그 번이라고 부르는 빵에 끼운 것이라는 굉장히 잘 정의되어 있는 음식이다. 미국의 유서 깊고 (핫도그에 한정해) 권위 높은(...) 국민 핫도그와 소시지 이사회(National Hot Dog and Sausage Council)에 따르면 핫도그에 올리는 조미료는 빵이 아닌 소시지 자체에 올려져야 하며, 조미료는 순서대로 보통 물기 있는 편인 머스터드와 칠리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되어 건더기가 많은 편인 렐리시, 양파, 자우어크라우트로 이어지고, 치즈가 올려진 후, 셀러리 소금이나 후추 같은 향신료로 마무리된다고 에티켓까지 작성해놓았다. 1그렇다. 케첩이랑 마요네즈는 신성모독이다.
"Condiments should be applied in the following order: wet condiments like mustard and chili are applied first, followed by chunky condiments like relish, onions and sauerkraut, followed by shredded cheese, followed by spices, like celery salt or pepper."
일단 NHDSC는 핫도그가 샌드위치가 아니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이와 달리 샌드위치는 정의를 내려줄 권위 있는 기관이나 협회가 없다. 빵 두 조각 사이에 무언가를 끼운 음식이라고 이야기를 마무리하기엔 단순히 빵 한 장에 무언가를 올려놓은 오픈 샌드위치의 존재가 신경 쓰인다. 만약 단순히 잼이랑 땅콩버터를 빵 한 장에 발라서 만들어먹는 PB&J를 오픈 샌드위치로 정의한다면, 아침에 토스트 한 장에 그냥 버터만 발라먹는 것도 샌드위치라고 정의해야 하는지 의문도 든다. 더 나아가면 "피자도 샌드위치라고 정의해야 하는가?"라는 미친 극단적인 사례에 다다르게 된다.
빵 두 조각 사이에 무언가를 끼운 것이라는 정의도 자세히 살펴보면 온갖 에지 케이스(edge case)가 튀어나온다. 예를 들자면, 베이글 샌드위치, 랩(wrap) 샌드위치 등 한국어로는 별생각 없이 그대로 샌드위치라는 수식어를 갖다 붙여버리지만 미국에서는 별개의 존재로 인식되는 수많은 사례도 있고 햄버거나 퀘사디아(quesadilla) 같은 사례도 존재한다.
연방 기관의 정의라면 어떨까?
일단 미국 농림축산식품부(USDA)의 202 페이지짜리 식품 표준 및 표기 매뉴얼을 정리해보면 샌드위치는 두 조각의 빵, 번, 혹은 비스킷 사이에 끼워진 고기 혹은 가금류 고기(poultry)라고 정의된다. 일단 가금류 고기 자체도 애초에 영문사전에서 고기로 정의되어 있는데 왜 따로 정의해 놨는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정의해 버리면 "PB&J, 야채 샌드위치,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 에그 샌드위치는 샌드위치가 아니다!"라는 납득하기 곤란한 결론에 이르게 되어버린다. 따져보면 무엇이 샌드위치인가에 대한 대답을 위해서 USDA는 적절한 기관이 아닐지도 모른다. 애초에 이렇게 고기 중심의 정의가 내려진 이유도 사실 식품 표기에서 USDA가 법적으로 담당하는 영역은 고기, 가금류 고기, 달걀로 한정되고 나머지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담당한다는 속사정도 있기 때문이다. 2그럼 정작 자기들이 담당한다는 달걀은 왜 샌드위치 정의에 안 들어가 있는가 신경 쓰인다면 지는 거다
세금을 매기기 위해 물건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하는 국가 기관들을 참고해보면 어떨까?
핫도그의 고향인 뉴욕 주의 세금 부과 대상 목록 ST-835에 따르면 샌드위치는 끼우는 것이 식빵, 베이글, 피타, 혹은 토르티야든, 몇 장 사이에 끼워져 있든, 중간에 뭐가 끼워져 있든, 차갑든 뜨겁든 통상적으로 조리 및 포장이 완료되어 준비된 상태(prepared)로 판매되는 거의 모든 것들로 규정되어 판매세가 부과된다. 이걸 또 재료들을 분리해놓은 상태로 소비자에게 팔아서(...) 세금을 피해 간 괴상한 판매업체도 생겨났다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지만, 일단 해당 정의에 따르면 치킨 랩 샌드위치도 샌드위치고, 베이글에 크림치즈 얹은 것도 샌드위치고, 오픈 샌드위치도 샌드위치고, 부리토도 샌드위치고, 핫도그도 샌드위치다! 정의를 엄밀히 따지면 피자도 샌드위치다 3(...). 환장할 노릇이다! 이걸 한 단계 심화시킨 콜로라도 주에서는 심지어 냉동 피자와 닭 날개 요리도 전부 샌드위치로 규정하고 세금을 매긴다. 오 마이 갓.
정의를 내리는 목적에 따라 참으로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정의다. 도대체 어디에서 너무 포괄적이지도 않고 너무 한정되지 않은 정의를 찾아야 한단 말인가.
샌드위치를 파는 식당과 그걸 구매하는 소비자라면 어떨까?
마침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우스터 카운티에서 매우 특수한 조건에서 적절한 판례가 발생했었다. 보통 미국에서 쇼핑센터와 들어서는 식당들 사이에서는 사전에 경쟁을 통한 팀킬(...)과 이에 따른 폐업으로 쇼핑센터가 새로 임대 업체를 찾아야 하는 수고를 방지한다는 논리에 따라 종목이 겹치는 두 개 이상의 식당이 쇼핑센터에 들어서는 것을 금지한다는 계약이 존재한다. 이 계약에 따라 화이트 시티 쇼핑센터에 들어선 파네라 브레드 빵집(Panera Bread)이 현지화된 멕시코 음식을 파는 큐도바(Qdoba)가 들어서려고 하자 쇼핑센터에 소송을 걸었다. 그렇다. 둘 다 패스트 체인점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부리토와 퀘사디아 등이 샌드위치에 해당된다고(...) 주장하는 태클도 포함된 소송이었던 것이다. 4

일단 법정 공방에서 선임된 전문가 증인 중 한 명인 케임브리지 지역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셰프 크리스토퍼 슐링거(Chris Schlesinger)가 이르길...
"나는 내가 아는 셰프와 요리 역사가들 사이에서 부리토를 샌드위치라고 부르는 그 어떤 사례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다. 상식적으로 그런 주장은 당연히 신뢰성 있는 웬만한 셰프와 요리 역사가들에게 전혀 납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큐도바가 샌드위치를 파는 업체가 아니라는 판결을 내린 판사 제프리 A 로크(Jeffery A. Locke)에 따르면...
"개정 웹스터 사전 국제판 3판은 샌드위치를 '보통 버터를 바른 두 조각의 얇은 빵 사이에 (고기, 치즈, 혹은 짭짤한 혼합물로 이루어진) 얇은 층이 발라진 식품'이라고 정의한다. 해당 정의와 일반적인 상식에 따라 해당 법원은 부리토, 타코, 퀘사디아 등이 일반적으로 샌드위치라고 인식되는 식품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을 내린다"
따라서 해당 법원이 인정한 정의에 따라 두 조각의 빵으로 이루어진 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핫도그는 샌드위치가 아니다. 다만 밈이나 이모지 등의 신생 단어가 사전에 새로 등장한 바가 있으며, 사회에 존재하는 일반적인 상식과 그를 반영하는 사전은 시대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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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hot-dog.org/culture/hot-dog-etiquette [본문으로]
- https://www.fsis.usda.gov/wps/wcm/connect/7c48be3e-e516-4ccf-a2d5-b95a128f04ae/Labeling-Policy-Book.pdf?MOD=AJPERES [본문으로]
- https://www.tax.ny.gov/pubs_and_bulls/tg_bulletins/st/sandwiches.htm [본문으로]
- https://casetext.com/case/white-city-v-pr-restaurants [본문으로]